안톤 체호프 -내기

2024. 9. 11. 22:58카테고리 없음

 

 

내일 12시에 나는 자유를 얻고 사람들과 교류할 권리를 갖게된다. 그러나 이 방을 떠나 태양을 보기에 앞서 나는 그대들에게 몇마디 해 줄 필요를 느낀다. 순수한 양심에 따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신 앞에 맹세코, 나는 자유와 생명과 건강을, 그리고 그대들의 책 속에서 지상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모든것들을 경멸한다고 그대들에게 단언하는 바이다.

십오년 동안 나는 속세의 삶을 면밀하게 연구했다. 내가 땅도 사람들도 못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대들의 책 속에서 향기로운 술을 마셨으며, 노래도 불렀고, 사슴이며 멧돼지를 좇아 숲으로 달려 들어가기도 했으며 여인을 사랑하기도 했다........ 천재 시인들의 마법으로 창조된, 구름처럼 하늘거리는 미녀들이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속삭여 주었고 나의 머릿속은 그 이야기들로 흠뻑 취하곤 했다. .그대들의 책 속에서 나는 엘브루스와 몽블라의 정상에 올랐으며 거기서 아침마다 태양이 떠오르고 저녁이면 그 태양이 하늘과 대양과 산맥의 정상을 발그레한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거기서 내 머리 위로 구름을 가르며 번뜩이는 번개를 보았다. 나는 초록빛 숲과 초원을 강과 호수와 도시들을 보았으며, 세이렌의 노래와 목동들의 피리소리를 들었고, 나에게로 날아온 아름다운 악마들과 신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날개를 만져 보기도 했다......그대들의 책 속에서 나는 바닥 모를 심연에 모을 던지기도 했으며, 기적을 창조하고, 살인을 하고, 도시를 불태우고, 새로운 종교를 설파하고, 완전한 왕국을 정복하기도 했다..

그대들의 책은 나에게 지혜를 가져다주었다. 지칠줄 모르는 인간의 사고 능력으로 몇 세기에 걸쳐 이룩해 낸 모든것들이 나의 두개골 속에서 작은 언덕으로 쌓였다. 내가 그대들 누구보다도 현명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또한 나는 그대들의 모든 책을 경멸한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지혜를 경멸한다. 그 모두가 시시하고 무상하며, 신기루처럼 공허하고 기만적인 것이다. 그대들이 아무리 오만하고 현명하고 아름답다고 해도, 죽음은 그대들을 마루 밑의 쥐새끼들처럼 지상에서 쓸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자손과 역사, 천재들의 불멸의 업적들은 꽁꽁 얼어붙어 버리거나 아니면 지구와 함께 불타 없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분별을 잃고 잘못된 길을 걷고있다. 그대들은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추악한 것을 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에 사과나무나 오렌지 나무에 무슨 일이 생겨서 열매대신에 개구리나 도마뱀이 열리게 된다면, 혹은 장미꽃이 말의 땀 냄새를 풍기게 된다면, 그대들은 놀라지 않을 수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한 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200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그 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기 위해 나는 약속한 기한이 다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여기에서 나갈 것이며 그럼으소써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