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각자의 일을 한다.

2024. 8. 17. 18:38카테고리 없음

내가 엄청 달렸을 떄가 있다.
그때가 사람들이 너무나 힘들어하던 코로나기간,
마스크를 쓰고,
시스템이 바뀌고
공부를 하게되고
일을 더 많이 하게되었다.

그때 나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내일 시험에 나올게 뭐였지?“를 생각하며 되뇌었고,
동영상강의를 찍느라
출퇴근길에도 눈이 쉴새없었고,
가끔은 학교 출석체크를 이동중에 하기도하고,
그렇게……
그렇게 24시간을 알차게쓴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게 썼다.

그때, 아마 누군가는 조금 느린속도로 달렸을 수도있다.
그게 코로나의 이유이건, 또 다른 이유이건,
그리고 나는 그때 내가 미래에 쓸 에너지까지 다 끌어썼다.

모든게 낫설었다.
학과과정도, 교수님의 과제에 대한 기대치, 수업에 필요한 리딩과 그걸 다 수행하지 못하는 나자신의 한계에 대한 체감.

그러다가 한 일년쯤 지났을까 줌 수업을 듣다가 쉬는시간이 되면
나는 벌러덜 요가매트에 누구워서 폼롤러를 머리에 대고 끙끙 앓았다.

오전시간은 수업과 과제를 위한 시간이었고, 오후-밤은 나의 생업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잘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연인또한 자기안의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못하는 상황이라
내가 위로받을 수있는 곳은 없었다.

어떤 날에는
과제를 못하겠어서
울면서 ” 못하겠어, 나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시작할 수가 없어“ 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그때, 지금은 헤어진 전남친은 나에게
”그래도 일단 시작해봐“ 이렇게 얘기해줬었다.
어쩌면
그냥 그런 한마디가 필요한거일 수있다.
하지말라고해도, 결국 하고, 해야하는것이 내 일이다.
그럴 때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나를 위해 누가 건네주는 말 한마디가 소중한것이고
그게전부이다.

너무나 많은 일이라고
벅찬일이라고 생각하지않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쉽게 흘려보낸 시간은 없었고
늘 공부아니면 일,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잘 해낼줄알았다.
변수없이,

그런데, 좀 상황이 달랐다.
내가 생각한것 그 이상으로, 변수도 대충 극복하기가 힘든 그런 변수들로 가득했다.
”아 이런날도 오는구나, 내가 노력만해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었지 참..“
이런생각을 하게되는 시기.




엄마는 날 너무잘안다.
그래서 내가 안다치고, 무리하지않고, 편하게 살길 원한다.
아빠도 날 너무 잘안다.
그런데 아빠는, 나의 상승의지를 현실에 맞춰서 꺾지않고 되도록 해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또한 바람직한것이다.(중간에 많이 타지 않는다면)

엄마와 아빠는 서로다르다.
그렇지만 둘다 내가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라신다.

좀더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
그들과 내가.
앞으로 좀더 솔직하게.

내가 바뀌면 주변사람들이 재배열된다- 라는 말을 이동진 평론가가 한 적이 있다.
그렇게 내가 바뀌면 우리엄마아빠도 나처럼 더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고, 부끄러워도 용기있게 말 할수있겠지
진짜 그 속마음을.

고인이되신 이어령선생님의 따님이 먼저 선생님의 곁을 떠났듯
그 누구의 운명이 먼저 다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받은 벅찬 사랑을
(지금 받고있는)그 사랑을 나는 하루하루 더 표현하고, 말로서 선물로서 전달하는데에 최선을 다하고있다.

”바쁜게 악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어느정도 선하고,어느정도 악한데, 결국 그 악함도 자기의 생존본능에서 나오는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바쁠 수있지만, 그상황에서도 잊지말아야할것은 “그러면서 내가 함부로하고있는것은 무엇인가, 훼손되어진 감정은 무엇인가”를 잊지말고
다시 주변과 자기자신을 살펴야한다는 점.

여유있을때는 누구나 편하고 여유롭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서 조급함과 갈급함으로 상대를 할퀴고 나 자신도 할퀸다.
그때를 조심하자.
잊지말자.